우울한 천사에게 입맞춤을 上

미나토 오오세 X 쿠사나기 리카이




그러니까 결코 나는 진짜 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가끔은 숨이 막히고, 이대론 안 되겠다고 절망하는 날도 자주 있었지만, 그래서 죽겠다고 설친 적도 여러 번, 아니 정정한다. 매일 있었지만…. 어쨌든 진짜 죽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창밖으로 몸을 던져 몸에 생채기를 조금 입히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위안이 되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난 그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이런 쓰레기가 살아있어도 되나 하는 이상한 죄책감을 잠시나마 덜고 싶었기 때문에 창밖으로 몸을 던졌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그냥 언제나의 하루였다.

 

“여, 여기가 대체 어디…….”

 

잠시나마 살아있다는 죄책감을 상쇄하고자 했던 행위에 정말로 하늘이 노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나 같은 쓰레기를 벌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는지는 몰라도 난 아마 지금 죽은 것 같다. 그래, 죽고 싶지 않았는데 진짜 죽어버리고 만 것 같다.

 

주변이 온통 하얘서 눈이 부셨다. 평소의 나였다면 당장 커튼을 치고, 담요를 뒤집어쓴 채 이 빛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을 테지만…. 지금은 얼떨떨한 기분이 앞섰기 때문인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진짜 죽은 걸까? 진짜로? 아직 난 스물하나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니 그걸 떠나서 문제가 너무 많았다. 내일은 석 달이나 밀린 집세를 내야 하는 날이었고, 오더가 들어왔던 액세서리 커스텀 작업을 끝내야 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에 사 두었던 우유의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였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렸던 소설책의 반납일도 오늘까지였고, 또….

 

어쨌든 중요한 건, 오늘은 죽으면 안 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눈앞이 컴컴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오늘에서야 진정 그 의미를 깨달았다. 쓰레기는 살아있어도 쓰레기, 죽어버려도 쓰레기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정말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니, 어쩌면 쓰레기에게 걸맞은 허무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등이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무엇이 달려있는 듯한…….

 

“어, 어?”

 

한숨도 자지 않고 다 늙은 사람처럼 등을 굽힌 채 악세사리 커스텀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생각하며 등을 더듬었는데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크고, 부드럽고, 어쩐지 예전에 키우던 새가 떠오르는 감촉. 이건 날개?

 

「되돌리고 싶으신가요? ▷YES ▷NO」

 

갑자기 등에 딱 붙어 생겨버린 날개에 당황할 새도 없이 눈앞에 파란 창이 떴다. 잠시만. 혹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닌 이상 내 눈앞에 게임처럼 파랗게 뜬 창은 뭐고, 내 등에 달린 날개는 뭐고,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뭐냐고.

 

「시간이 지나 자동으로 YES가 선택되었습니다.」

 

어이! 지금 장난하냐고. 몇 초나 지났다고 성급하게 제멋대로 결정해 버리느냔 말이야. 빌어먹을 놈의 꿈속의 상황이라서 그런지 빌어먹을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진짜 꿈은 맞는 걸까? 그도 그럴 게, 평소에 잠은 거의 자지 않고, 잔다고 해도 선잠을 자기 일쑤였기 때문에 꿈이란 건 어릴 때 이후로 꿔본 적이 없다. 그리고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사람의 꿈은 대부분이 흑백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긴 너무 하얗고. 파랗고….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아니, 아니 그럴 리는 없지. 나 같은 놈이 천국에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죽으면 분명히 지옥에 끌려가 펄펄 끓는 불에 타죽어 새까만 재가 될 테니까.

 

「당신이 인간으로 되돌아갈 방법은 단 한 가지.」

 

응? 난 지금도 인간인데, 설마 이런 상태창조차 나를 쓰레기 취급…….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키스를 받으세요.」

 

뭐!?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키스, 라니.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제 이런 무생물조차 나를 얕보는 거야!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지만, 이게 꿈속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얕보는 건 상태창이 아니라 나 자신이겠지. 아니 애초에 왜 이런 꿈을 꾸는 건데?

 

“…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 같은 거 받을 수 있을 리가 없고. 애초에 나 같은 걸 누가 사랑해 줄 리도 없잖아.”

 

그러니까 안 돌아갈래. 뒷말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밟고 있던 땅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벌써 익숙해지기 시작한 파란색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묘하게 아까보다 글씨가 커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아까가 10pt 정도였다면, 지금은 32pt에 볼드도 적용한 것 같은데.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죽었으면 끝 아닌가?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보 값 초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렇게 밝은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못 해! 그런 건 죽어도 안 해!”

 

이미 죽었지만.

 

「시간이 지나 자동으로 YES가 선택되었습니다.」

 

그 상태창을 끝으로 땅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



떨어지기 직전, 상태창이 내게 당부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현재 천사인 ‘오오세’를 볼 수 있는 건 처음으로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르다, 고 했다. 당연히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니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영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나랑 어울리지도 않고.

 

“아야아…”

 

일단 그건 둘째치고 겨드랑이랑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내가 웬 나뭇가지에 걸려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러니까 아프지! 뾰족한 나뭇가지에 찔렸는지 옷은 꽤 너덜너덜해져 있고(나름 아끼는 옷이었는데) 어떻게 떨어졌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몸이 엄청나게 아팠다.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분위기의 동네. 평소에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일단 여기서 내려오는 게 급선무다. 뛰어내리는 건 자신 있으니까.

 

쿵.

다행히 다리로 착지했다!

 

“헤헤.”

“사, 사, 사, 사, 사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고 뒤를 돌아보자 웬 안경을 쓴 남자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은 내가 아니라 마치 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저, 제가 보이시나요?”

“사, 사, 사람!!!!! 사람 맞지!!!!!!!”

“……보이는군요.”

 

괴물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동네가 떠내려갈 듯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 의기소침해져서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마침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세븐일레븐 봉투가 보여, 묘하게 반가운 마음에 그걸 집어 얼굴에 뒤집어썼다.

 


***

 


길길이 날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 남자는 잔뜩 생채기가 난 내 맨발을 보고는 깜짝 놀라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겁도 없는지, 그는 손을 덥석 잡고 이 상처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추궁해 왔고, 혹시 가출한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봉투만 뒤집어쓴 채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를 보고 그는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 자신의 집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날 욕실로 쳐 넣었고, 날개가 어떻게 된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의가 통 벗겨지질 않아서 결국 나는 대충 손과 발을 비누로 닦고 나왔다. 그는 자신을 닮은 하얀 수건을 내게 내밀어 얼른 물기를 닦으라고 재촉했다. 대충 손과 발의 물기를 쓱쓱 닦고 뻘쭘하게 서 있자, 계속 서 있을 거야? 라고 꽤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 그, 그, 그건 코스…”

 

응? 가까이 선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이윽고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더듬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코스?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뭔가 물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영 시원스레 질문이 나오지를 않는다.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빨개?

 

“코, 코, 코스프, 하하! 아! 아! 코스프레인 거지?”

“…네?”

 

혼자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몸을 들썩들썩하고, 뭔가 이 사람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의 질문을 듣자마자 응, 이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야. 생각했다. 코스프레? 뭘 보고 코스프레라는…….

 

아, 나 날개 달렸지.

 

“아 뭐, 그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눈을 더럽혀서 죄송해요.”

“아니! 눈을 더럽히다니. 절대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건 실제로 처음 봐서.”

 

얼굴이 아까보다 더 빨개진다. 사람의 몸이 대체 어디까지 빨개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 원래 몸에 열이 많은 건지, 아니면 어떤 부분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건지 전혀 추측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이 얘기를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황급하게 말을 돌렸다.

 

“데리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의 이름은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미나토 오오세입니다.”

“어어, 마침 물어보려던 참이었어! 오오세 군.”

 

그래서 당신 이름은? 하는 얼굴로 그의 눈을 바라보자 휙, 시선을 옆으로 돌리더니 뒤이어 나는 쿠사나기 리카이고 스물다섯이야. 하고 소개했다.

 

그는 내게 어떤 사연이 있다고 얼핏 예상했는지 깊게 캐물어 오지는 않았다. 다만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아침부터 그런 차림(여기서 기침을 정확히 서른 일곱 번 했다)으로 돌아다니는 건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좀 더 질서 있게 행동하는 것이 좋겠다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나는 되려 그에게, 그런 차림을 한 모르는 남자를 집에 데려온 당신이야말로 주의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속으로 말을 삼킨 채 고개만 끄덕였다.

 


***

 


그와의 생활은 나름대로 할 만했다. 내게 남는 방이 있다며,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어떤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 부모님께 연락을 취하라고 했고, 내가 창문에서 뛰어내리던 시점에서 박살 나버린 핸드폰을 보여주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늘 똑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똑같은 시간에 기상했다. 마치 ‘짱구’라도 된 것처럼 늘 검은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를 고수했고, 삼시 세끼를 영양식으로 차려 먹었다. 그 옆에는 늘 내가 함께했다. 그의 집은 너무 밝고, '그' 자체만으로도 눈이 부셔서 견디기 힘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같이 지내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내 몸에 슬슬 이상 반응이 생기고 있었다. 발끝이 미세하게 흐릿해 보인다던가, 컵을 잡을 때 이따금 손이 컵을 통과하는 경우가 있다던가. 그런 정말 꿈같은 현상이었다. 내가 죽기 직전에 천사가 된 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기분 나쁠 만큼 오래 이어지는 꿈인 건지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확실히 이상하다.

 

“진짜 뭘 어떻게 해야….”

 

「어서 진심 어린 사랑의 키스를 받으세요!」

 

응? 방금 뭐지? 눈앞에 전에 봤던 상태창 같은 게 반짝, 빛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한 걸까? 속는 셈 치고 정말 진심 어린 사랑의 키스를 받기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걸까. 애초에 별로 살고 싶지도 않지만. 아니 그렇다고 해서 죽고 싶다는 것도 아니긴 한데.

 

벌컥.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어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오오세 군 일어났으면 밥을 먹어야지!”

 

대뜸 방에 찾아온 불청객은 리카이 씨였다. 아니, 내가 지금 머무는 곳은 어쨌든 리카이 씨의 집이니까 따지고 보면 불청객은 내 쪽이긴 하다.

 

“……저 같은 놈은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초콜릿이면 괜찮아요.”

“안 돼! 삼시 세끼 골고루 챙겨 먹지 않으면 몸 상태가 망가져 버린다고. 게다가 오오세 군, 너 안색도 좋지 않고.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 건가?”

 

빌어먹게도 아니. 잠을 전혀 자지 못하고 있다. 나는 졸리지 않아도 눈을 감으면 잘 수 있는 꽤 편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도, 내 등에 날개가 달린 이후부터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양을 백 마리, 천마리, 양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벌레의 수를 다 세어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으니까 정신이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이고, 진짜 내가 천사가 된 게 맞다고 정신병자 같은 믿음이 생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날개! 이게 너무 무거워서 마음마저 땅으로 처박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제 그 옷은 좀 갈아입는 게 어때? 같은 옷을 세탁하지 않고 계속 입는 건 위생에도 좋지 않고….”

“…….”

“그, 코, 코, 코! 코, 코스프레, 큼큼, 하하! 아무튼 그것도 좀 벗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쓰레기 같은 날개… 코스프레 아니에요.”

 

이제 말할 때가 온 것 같다.


 

***


 

“……어, 그러니까, 네 말은…….”

 

진짜 죽으려던 건 아니고, 언제나처럼(도대체 왜?) 자살 소동을 벌였을 뿐인데 정말 죽어버리고 말았고, 근데 사실 그게 정말 죽은 게 아니라 유예기간처럼 천사(이런 게 진짜 있다고?)가 되었고…….

 

“인간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키, 키….”

“키스요.”

“그래. 그 키, 키…… 를 해야 한다고.”

“네, 정확해요. 역시 리카이 씨네요.”

 

이해가 빨라. 흘리듯 내뱉은 말에 리카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니, 리카이 형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데! 하고 외쳤다. 어쨌든 내가 키스를 받아야만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내 빌어먹을 날개는 코스프레가 아니라 그냥 내 쓰레기 같은 몸뚱이에서 솟아난 또 다른 쓰레기, 뭐 그 비슷한 거라는 걸 알리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를 속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행위였으니, 쓰레기 같은 짓인 건가.

 

“살기 위해서 그걸 받아야 한다니…….”

 

리카이 씨는 드물게 평소와 다른 표정을 지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턱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눈을 감은 그 모습이 퍽이나 비장해, 마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기사처럼 보였다.

 

“그러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누구랑 만나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뇨.”

“응?”

“다른 사람한테는 제가 안 보여요.”

 

뭐? 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리카이 씨의 얼굴이 제법 웃기다. 아까는 듬직한 기사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어린 애처럼 보여.

 

“들은 바로는… 저랑 처음 눈이 마주친 사람만 저를 볼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나는 리카이 씨의 키스를 받아야 해. 그 말을 따로 뱉지는 않았지만, 영리한 그는 숨은 뜻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챈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더니, 막 구워진 타코야끼처럼 터질 것 같았다. 그의 감정은 참 알기 쉬워서 재밌다. 나랑은 다르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던 중, 그가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입에 뜨거운 게 닿았다.

 

그의 입술이었다.



***

 


“첫 키스였는데…….”

 

유감이군요.

 

“진짜로 첫 키스였는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내 옆에 누워 날개를 이불 삼아 덮은 그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입술을 부딪쳐 와서 깜짝 놀랐지만, 그는 나름대로 나를 위해 용기를 내어 한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건 다 내가 조건을 설명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또 내 잘못인 거지…….

 

“죽을게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자신을 덮었던 두툼한 날개가 사라져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던 그가 나를 올려다본다. 나보다 키가 커서 늘 올려다봐야 하는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내려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 아니, 이게 아니라.

 

어쨌든 나는 그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다. 나 같은 쓰레기와 한 키스가 첫 키스라니. 사실 키스라고 할 것도 없이, 단순히 입술만 부딪힌 행위였지만 옆에서 25년간 아껴온 내 입술이… 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듣자 정말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카이 씨의 첫 키스 상대는 이왕이면 나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그와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좋았을 것이다.

 

살짝 열린 창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를 보며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벙찐 채 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창틀에 발을 올렸을 때.

 

“안 돼!!!!!!!!!!!!!”

 

그가 잽싸게 달려와서 내 날개를 잡았다. 아! 날개에 아무런 감각도 없는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슬쩍 뒤를 쳐다보자, 그가 거의 내 날개를 찢어 갈길 것처럼 세게 쥐고 있었다. 이 사람 힘은 또 왜 이렇게 세.

 

“저 같은 쓰레기가 리카이 씨의 첫 키스를 뺏어 가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죽겠습니다. 죽을게요. 죽으면 키스도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요!”

“고작 그런 걸로 죽지 마!!”

 

그는 거의 절규하듯 소리치며 내게 매달렸다.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그는 내게 그날도 그런 식으로 죽으려고 했군, 하고 혀를 끌끌 찼다. 한 번뿐인 삶인데 소중한 너의 목숨을 그렇게 헛되이 낭비해선 안 된다는 잔소리도 삼십 분 가까이 이어졌다. 어쨌든 내 목숨에 대해 이렇게까지 진득하게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오세 군. 왜 키… 음, 그걸 했는데 날개가 그대로지?”

“…….”

“응? 뭔가 또 있나?”

“그, 그게…….”

“……?”

“죄송해요.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그게 뭐지? 설명을 요하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그를 도무지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내 얼굴을 감출만한 봉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 고 웅얼거렸지만 내게도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가 그에게 들릴 리 없었다. 그는 오오세 군! 대화할 땐 사람의 눈을 보고 해야지! 하고 꾸짖었으나, 이런 쓰레기 같은 부탁을 당신에게 할 수 없잖아. 괜히 원망한다. 정말 쓰레기처럼.

 


***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담아 키스를 해줘야만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방문을 열고 나갔고, 나는 뒤따라갈 용기가 없어 그 자리에 박힌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키스를 받아야만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내가 무슨 개구리 왕자도 아니고. 미나토 오오세, 진짜 한심하다.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무슨 그딴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네가 왕자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아니, 애초에 널 사랑해 줄 사람이 있긴 해? 그렇게 욕실에 달린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질타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내 얼굴은 시체처럼 아무 색이 없고, 내 등에 달린 빌어먹을 날개도 그대로고…….

 

아, 이젠 진짜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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